역사서를 읽을 때의 주의점

역사서를 읽을 때는 쓰인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행간을 주의하면서 읽도록 하자.

* 박지원, 박제가, 이희경은 때로는 성리학의 정통 학설을 거스르면서까지 공업과 유통의 생산성 증대의 중요성을 역설하였으며, 특히 박제가, 이희경은 문헌과 경험을 통해 수집한 관련 지식을 집대성함으로써 성리학적 공학이라는 학문의 가능성을 선보였으나, 결국 성리학의 복고적인 이상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아울러, 당시 조선에 기술적, 기술철학적으로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는 훌륭하게 분석하였으나, 대개의 경우 지시적인 자세만을 취하여 그 기술을 구현하는 개인의 행동에 대해서는 충분히 분석하지 못하였다. 서양 철학사에 비유하자면, 고대 그리스·로마 철학과 역사를 연구하여 인문주의의 등불을 밝힌 르네상스적 인간이기는 하나, 고전 철학의 틀을 깨고 나온 근대적 인간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뜻이다.
* 오히려 그런 면에서 유수원을 다시금 주목하게 된다. 비록 유수원 연구의 주된 주제는 아니었으나, <논상판사리액세규제>에서는 주어진 국가의 제도적 조건에 반응하는 개인의 행동에 관해 추론하고 있으며, 비록 오늘날 보기에는 얄팍하지만, 다른 어떤 실학자의 저서보다도 상세히 분석하고 있다.
* <일동기유>의 후서에 근대화를 이미 이십여년 간 추진한 일본을 상대로 마치 수백년 전에 여진족 부락을 상대로 한 교린 정책과 비슷한 것을 추천했다 하여 김기수를 세상 물정에 어둡고 성리학적 편견에 사로잡힌 꽉 막힌 수구파 정도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일동기유> 제 3권의 내용을 보면 당시 일본의 근대화된 신문물과 기술, 경제적 발전 수준, 민족성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일본이 중국보다 발전했다고 평가를 내린 점인데, 기존 성리학자들이 중국 문명을 이상적으로 놓고 다른 모든 문명을 거기에 견주어서 파악한 것과 대비된다. 18세기~19세기 초 실학자들의 저술을 보면 국가의 번영은 곧 주례를 따르는 것과 동치인데, 어느 새인가 중국보다 발전된 국가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일동기유>는 수구적이기는커녕, 조선 지식인의 세계관에 패러다임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을 포착하고 있는, 개화 사상의 맹아적인 저서로서 다뤄져야 한다. 물론 당시 일본에서 성리학이 구닥다리 학문으로 천시되는 세태를 개탄하긴 했지만, 그게 일본의 객관적인 발전상을 부정하는 단계로 나아가지는 않았으므로, 김기수는 동도서기적인 관점에서 다만 일본에 성리학이 보충적으로 중흥하기를 기원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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