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 교육에 관한 의문

[육동인의 業] <7> ‘남과 다름’이 중시되는 취업

유대인의 교육은 창의성을 강조하고 질문을 통해 비판적 사고를 하는 것을 중요시하며...
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각종 기사나 기고문을 흔히 볼 수 있다.
네이버에 '유대인,' 교육,' '창의성'을 키워드로 뉴스 검색을 해보면 쏟아져나온다.
마침 육동인이라는 사람이 EBS에서 그런 유대인의 교육방식에 관해 강연하던 도중 비슷한 내용이 언급되어
이에 관한 생각을 짧게 적어보고자 한다.

1. 개념의 문제
과연 교육을 창조적 사고를 함양시키는 '창의성 교육,' 또는 비판적 사고를 증진하는 교육과
그에 대비하어 암기 위주의 교육이나 이른바 무비판적 수용을 요구하는 '주입식 교육'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인가?
어떻게 보면 당연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그렇지 않다.
가령, 수학이나 철학을 공부하더라도 어떤 개념이나 명제에 관해 기본적인 암기가 수반된다.
중요한 개념과 정리에 관해 외우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창조적이고 비판적인 사고가 가능할 것인가?
암기는 창의적, 비판적 사고의 전제이며 또한 결과물로서, 둘을 구분하거나 연속선 상의 양 극단으로 여기는 것은 불합리하다.
(예외적으로 신학이나 종교 교육에서 특정 문헌을 '계시된 문헌'으로서 통째로 암기하는 경우는 있겠으나,
현대 공교육에서는 드물고 예외적인 경우이다.)
또, 현실적인 이유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넘어가야 하는 개념 또한 많다.
예를 들어, 수학 수업에서 증명 문제가 나왔을 때 어떤 학생이 번쩍 손을 들고
'과연 수학에서 증명이란 무엇인지 먼저 규명하고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한다면 어떨까?
원칙적으로는 학생의 말이 맞다. 그러나 과연 그런 식으로 수학 수업을 진행시킨다는 게 가능할까?
적당한 블랙박스화는 필요하다. 그러므로 모든 교육은 어느 정도는 주입식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 검증의 문제
'창의성 교육'이라는 것이 잘 정의된 개념이며 또한 이론상 가능하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과연 그걸 증진시킬 수 있는 교육 방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인가?
개발된 방법의 효과성을 검증하고 서로 다른 방법 간의 우열을 가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른바 '유대인식 교육'을 비롯해서, 언론 기사나 기고문에 나오는 교육 방법 소개를 보면
경험적, 과학적으로 검증되었다고 소개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 듯 하다.
대부분 일화적인 관찰이나 상관관계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이런 건 인과관계의 방향이나 교란변수의 영향을 통제할 수 없다.
애초에 교육이 얼마나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를 증진하는지,
비판적 사고와 창의성이 개인과 사회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실질적으로 검증된 적이 있나?
물론 여기에 '낙하산의 효과성을 이중맹검법으로 검증하려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냐' 하고 비판할 수 있을 텐데,
물리 법칙과 의학적 관찰 결과로부터 낙하산의 효과성은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과연 창의성을 비롯한 인간의 사고나 교육, 그리고 교육이 개개인인 또는 그 집단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과연 얼마나 풍부하고 정밀하며 일관된 법칙이나 모델을 갖고 있는가?
인간과 사회에 관한 과학적, 사실적 지식을 토대로 유추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편견일 수도 있는
일반적인 상식을 일견 뒷받침하는 사례만을 내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유대인이 여러 모로 뛰어난데 유대인은 이런 교육을 하더라.
내가 생각해보건데 이러이러한 경로로 유대인의 성공은 특유의 교육 방식에 있는 것 같다.
고로 우리도 그런 교육을 하면 이런저런 좋은 효과가 있을 것이다.'
보다는 좀 정교한 논증이 필요하다.


3. 평가의 문제 (사족)
이건 조금 사족일 수도 있는데, 어떤 능력을 측정하는 평가 방식이 그 능력을 그대로 발휘시킬 필요는 없다고 본다.
만약 해당 능력에 잘 연관된 대리변수가 있다면 그 대리변수를 측정하는 것으로 해당 능력을 충분히 평가할 수 있으며,
만약 대리변수를 측정하는 게 정확성, 정밀성, 경제성에 있어 우월하다면 그쪽이 더 좋은 평가 지표가 될 수도 있다.

가령, 의사의 진료 능력을 평가할 때 가장 정확한 방법은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실제 진료 환경에서 진료를 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매년 새로 배출되는 의사면허시험 응시생을 다 이런 식으로 평가하는 것은 비용도 많이 들고, 환자의 이익을 고려하면 비윤리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환자 케이스를 지문으로 제시하고 진단과 향후 계획을 묻는 문제를 내기도 하고,
인체 모형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술기를 시행해보게도 하며, 모의 환자를 대상으로 실제 진료와 유사한 환경에서 모의 진료를 시키기도 한다.
이 중 어느 것도 엄밀하게는 실제 환자와 같지 않고, 또 해당 평가 기준에 특화된 공부를 하도록 유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 비용도 적게 들고 더 윤리적이며, 실제 진료 능력을 상당한 정도로 반영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나 대학에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시험을 치르고 있다.
이를 창의적, 비판적 사고력 측정에 적용해보자면, 창의성이나 비판적 사고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창의성이나 비판적 사고를 발휘하도록 할 필요가 있는가?
가령, 중요한 개념과 정리, 공식 등을 암기하고 있는 사람이 더 의미있는 질문을 적극적으로 할 가능성이 높다고 가정하자.
그럼 시험 과목 중 상당 부분을 암기한 지식을 묻는 시험으로 하고,
탐구력이나 창의성에 좀 더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지만 비용이 많이 드는 과목의 분량은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일차로 암기 시험을 봐서 측정 점수 이상을 받은 소수의 응시자만을 대상으로 그런 평가를 진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평가의 의미는 '평가하고자 하는 속성에 관해 얼마나 좋은 정보를 얼만큼의 비용으로 제공하는가'이며, '속성 그 자체에 얼마나 가까운가'일 필요는 없다.

4. 수요의 문제 (사족)
이 또한 사족으로, 2번과 겹치는 주제이기도 하다.
비판적, 창의적 교육이 존재하고 가능하다면, 과연 모든 사람이 그런 교육을 받아야 하는가?
직업의 종류와 특성은 다양하고, 충분히 규모가 큰 사회에서 산업과 경제가 얼마나 변화한들
창의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 예를 들어 전문적인 지식 노동자나 예술가, 학자는 소수일 수 밖에 없다.
아이디어라는 것은 비경합적, 비배제적 특성을 갖고 있으며, 또 많은 경우 그 희소성이나 독창성 자체가 그 아이디어의 가치를 상승시키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가정에서, 혹은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공교육에서 과연 비판적, 창의적 사고를 확대하고 장려할 필요가 있을까?
자칫 인적자본에 대한 과잉 투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오히려 조기에 창의성 교육에 적합한 소수의 학생을 선발해 선택적으로 교육하거나,
성인 단게에서 해당 직업에 종사하고자 하거나 종사 중인 사람을 대상으로 창의성 증진 교육을 하는 것이 비용 대비 더 뛰어난 효과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대부분의 사람은 단순히 시민적 교양 함양이나 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상식을 획득하는 것을 넘어
좋은 직업을 얻고 좋은 직장에서 일하기 위해 교육을 받는다.
즉, 교육은 노동 시장의 수요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이 크다.
그렇다면 창의적 인재 육성에 앞서 과연 우리나라 경제가 창의적인 인재를 얼마나 필요로 하고 있는지, 
직장에서 창의적 인재를 얼마나 잘 선발하며 또 효과적으로 활용, 육성하고 있는지부터 점검해보는 것이 순리이다. 
따라서 외국의 교육보다는 외국의 인재 경영을 우선 벤치마킹하는 것이 필요하다. 


솔직히 말해 그냥 언론에서 무슨 점쟁이마냥 뇌피셜로 상대가 원래부터 듣고 싶어하던 얘기 해주고서는 지식인 행세하는 인간이 꼴보기 싫어서 썼다.

덧글

  • 외세결탁 신라와 한국 2018/09/26 02:27 # 답글

    한국은 괴뢰반동국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비판적 사고를 두려워하는 면이 있습니다. 지금이야 먹고사는 문제와 민주주의 측면에서 모두 김조를 앞섰지만 박정희 이전에는 거지와 미군위안부가 우글거렸고 이북은 지상낙원이라 자처할 정도였죠.
  • 소드피시 2018/09/26 18:32 # 삭제 답글

    교육 부문으로는 보기드문 좋은 글이네요. 잘 봤습니다.
  • 채널 2nd™ 2018/09/26 22:09 # 답글

    >> 자칫 인적자본에 대한 과잉 투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작금의 우덜 남조선의 영어에 대한 '투자'(?)가 바로 그런 경우라고 봅니다 -- 수학이라든가에 대한 투자는 점수 때문이라지만 대개 고등 학교 이후에는 더 이상 수학에 대한 끈은 놔 버리지만, 영어는 ㅎㅎㅎㅎㅎㅎㅎㅎ

    (창의고 나발이고 쓸데가 없는데 -- 창의라도 하라지면 ㅋㅋㅋ 갈굼이나 당하는데 -- 창의하면 뭐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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