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에 글삭튀한 조선일보 vs. 1년 10개월 넘게 버틴 JTBC

역시 JTBC가 상남자네 ㅋㅋ

트랙백할까 했지만 관심을 갈구하는 그분을 더욱 자극할까봐... 

유시민의 독재 이해

유시민 "한국당이 독재에 집착하는 이유? 문 정부 흠 잡을 데가 없어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자유한국당이 독재를 강조하는 이유에 대해 “다른 걸 흠잡을 데가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모든 독재는 세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한다. 첫째 유신헌법이나 긴급조치처럼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하는 데 필요한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 둘째 제도적 장치가 명시적으로 보장하는 것 이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행태가 있어야 한다. 셋째 권력자가 그러한 제도와 행태에 어울리는 가치관과 행동 양식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현행 제도는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때와 똑같다. 고친 제도가 하나도 없다. 정부가 권한 범위를 넘어서서 (권력을) 휘두르고 있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독재자 캐릭터가 전혀 아니다”라며 “한국당은 요즘 참 합리적으로 분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유시민 주장을 정리하면 

P: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는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하는 제도적 장치가 있었다. 
Q: 문재인 정부는 독재 정부이다
R1: 문재인 정부에서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하는 제도적 장치가 있다.
R2: 문재인 정부에서 제도적 장치가 보장하는 것 이상의 권력 행사가 있다.
R3: 문재인이 (독재) 권력 제도와 행태에 어울리는 가치관과 행동 양식이 있다.

전제 1: If R1 then P

전제 2: ~P

결론 1: Therefore, ~R1

전제 3: If Q then (R1 AND R2 AND R3)

전제 4: ~R1 AND ~R2 AND ~R3

결론 2: Therefore, ~Q

이하 이 주장을 분석해보자.

우선 위의 세 가지 조건 중에서 R1과 R2를 모두 만족시킬 필요 없이 둘 중 하나만 만족시켜도 다른 하나와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
가령, 고위공직자수사처의 권한을 무진장 확장한 것과 같은 기관의 권한을 법률상으로는 좁고 명확하게 정의하되 그걸 벗어날 경우에도 아무런 제재가 가해지지 않는 것은 구분하는 의미가 없다.
따라서 (R1 AND R2 AND R3)을 ((R1 OR R2) AND R3)으로 고치는 것이 옳겠다.

그에 따라 다시 적어보면

전제 3': If Q then ((R1 OR R2) AND R3)

전제 4: ~(R1 OR R2) AND ~R3

결론 2: Therefore, ~Q


독재의 학문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출처: Ezrow, N. M. & Frantz, E. Dictators and Dictatorships: Understanding Authoritarian Regimes and Their Leaders, Continuum, 2011)

# Authoritarianism
* Juan Linz: Authoritarian regimes are political systems with
- limited, not responsible political pluralism
- without intensive nor extensive political mobilization
- in which a leader or a small group exercises power within formally ill-defined limits but actually quite predictable ones
* Samuel Huntington: Authoritarian regimes are characterized by
- a single leader or group of leaders
- with either no party or a weak party
- little mass mobilization
- limited political pluralism
# Dictatorship
* Daron Acemoglu & James Robinson: Dictatorships are regimes in which
- the governments represents solely the preferences of a sub-group of population
* Paul Brooker: Dictatorships are defined as
- the theft of public office and powers
* Adam Przeworski et al.: Dctatorships are
- not democracies; those who govern are not selected through contested elections
# Totalitarianism
* Juan Linz
- Totalitarian regimes:
   - Goals of the regime are social revolution, aiming to transform human nature
   - Ideology plays a strong role, provides legitimacy
   - Strategy to achieve these goals is to subject society to terror
   - Regime has a high level of organization and total control over society
   - Key holders of power are the leader, secret police, and party
   - Emphasis on mass mobilization
   - Regime exercises total control over society
- In contrast, authoritarian regimes:
   - Role of ideology is weak
   - Goal is to depoliticize and de-mobilize society
   - Small degree of pluralism is allowed
   - Political parties, if they exist, are devoid of ideology and may not play an important role in the regime
   - Regime does not exercise total control over society; masses have some political power
   - Terror and propaganda may be used, but not to the same extent as in totalitarian regimes
# Competitive Authoritarian Regimes
* Steven Levitsky & Lucan Way
- Elections are held and outcomes are not predetermined, though incumbents have large advantages and manipulate the formal democratic rules
- Legislatures and the judiciary exist, but both are very weak
- Opposition political parties are legal and the media is free to operate, but both are heavily restricted in their freedoms
# Electoral Authoritarianism
* Andreas Schedler
- Liberal democracy: regimes that go beyond the minimum requirements for democracy
- Electoral democracy: regimes that have
   - Free & fair elections
   - Fail to institutionalize other vital dimensions of democratic constitutionalism
      - The rule of law
      - Government accountability
      - Civil liberty
- Electoral authoritarian regimes:
   - Elections are manipulated in favor of the incumbent to such a degree that they are not considered truly democratic
   - Elections are still means of contesting power
   - Opposition rarely wins a majority of seats

이와 같은 다양한 유형과 정의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는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는가, 그리고 그런 다양성이 민주적 선거를 통해 국가의 권력 행사에 반영될 수 있는가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겠다. 즉, 자유대표성이 키워드이다.

국가 권력을 행사하는 제도는 독재의 정의에 적어도 핵심적인 요소는 아님을 알 수 있다.
독재의 정의에 포함시킨 경우에도 완전한 민주주의가 아닌 경우를 독재로 정의하는 경우다.
즉, 유시민은 독재에 대해 거창하게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지만, 사실 이에 관한 이해가 낮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유시민이 제시한 조건에 그나마 가장 가까운 것은 Linz의 정의 중 세 번째 요소, 즉 'a leader or a small group exercises power within formally ill-defined limits but actually quite predictable ones' 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formally ill-defined limits는 (R1 OR R2)에, quite predictable은 R3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R1의 경우 최근 논란이 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 및 연동형비례대표제의 도입이 있었으므로 전제 1이 틀렸다. 
따라서 결론 1을 유도할 수 없다. 반면, 후술하는 바와 같이 자유한국당에서는 R1이 참임을 주장하고 있다. 

R3의 경우 청문회 결과를 포함한 각종 논란에도 불구하고 친문 인사를 대거 장관, 헌법재판관 등 행정부, 사법부 요직에 일관되게 임명하는 것과 같은 행동 양식을 보면 R3이 사실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Linz, Huntington, Acemoglu, Brooker, Levitsky & Way) 주관적인 가치관은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것도 어렵다. 그래서 사실 R3는 명제라고 부르기도 어렵지만, 굳이 부른다고 한들 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전제 4가 틀렸고, 전제 3'으로부터 결론 2를 유도할 수 없다. 

보충자료: 

유시민의 발언과  비교하고 자유한국당이 독재를 언급한 배경과 좀 더 구체적인 의미를 알기 위해 다음 자료를 참고해보자. 

나경원 "좌파독재플랜 목숨 걸고 막아야…최종배후는 文대통령"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23일 선거제·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과 관련해 "좌파독재플랜, 개헌을 마음대로 하겠다는 플랜이 작동되는 것이다. 이것을 목숨 걸고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무한권력 대통령, 지리멸렬한 국회의 최종 배후는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공수처 법안이 패스트트랙에 태워지는 순간 민주주의 생명은 270일 시한부가 된다. 민주주의 붕괴 270일 카운트다운이 된다"며 "의회 민주주의의 사망선고이고, 삼권분립이 해체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기획하고, 여당과 일부 야당이 실천에 옮기는 의회 민주주의의 파괴가 시작됐다"며 "국민주권에 반하고, 국민주권이 침탈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수처 법안에 대해서도 "핵심은 판사·검사·경무관급 이상 경찰을 수사할 때 공수처에 기소권을 준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청와대가 마음대로 법원·검찰·경찰에 대한 권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라며 "청와대에 공수처라는 또 하나의 칼을 줄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여당이 패스트트랙을 포기하고, 사법개혁특위와 정치개혁특위를 정상화하면 대통령이 제안한 여야정 협의체 참여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며 "좌파독재를 완성하려는 밥그릇 싸움을 그만두고 민생을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선봉에서 좌파독재 막을 것" 정부 규탄 광화문집회

한국당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집회를 열어 "정부가 좌파독재를 하려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 대표, 나경원 원내대표 등이 참여한 자유한국당의 첫 장외 투쟁이다.
이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발언:
국민 여러분 지금 2년 문재인 정권 한결 같이 좌파독재의 길을 걸어왔다.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좌파 천국을 만들어 놨다. 공정한 선거를 책임져야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 문재인 대통령 캠프 출신을 앉혔다. 그렇게 해서 내년 총선 240석, 260석 하겠다고 하는 것 아닌가.
국민을 위해서 일해야 할 장관들,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코드 인사’들만 임명했다. 경제가 망하든 말든 자기편만 챙기겠다는 심리 아니겠나. 급기야 헌법재판관까지 청문회 무시하고, 국민들의 반대도 무시하고, 짓밟고, 주식부자 코드 인사를 밀어붙였다. 헌법재판, 대한민국 헌법까지 자기 마음대로 주물러서 좌파독재 완성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앞에 이인제 고문, 나경원 원내대표께서 얘기한대로 지금 우리나라 삼권분립이 무너져 가고 있다. 자유민주주의가 무너져가고 있다. 이 나라가 무너져가고 있다. 힘도 없는 지난 정권 사람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잡아넣는다. 아무리 큰 병에 시달려도 끝끝내 감옥에 가둬 놓고 있다. 그래놓고 무려 8,800만 건 댓글조작해서 감방에 간 김경수 말도 안 되는 보석판결로 풀어줬다. 이제 대놓고 증거인멸 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친문무죄! 반무유죄! 유권무죄! 무권유죄!’ 이것이 이 정권이 말하는 민주주의가 이런 건가.
그래놓고 국민의 저항이 두려워서 ‘사찰정치, 공작정치, 공포정치’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 대학생이 대자보 붙였다고 경찰이 집에 함부로 쳐들어갔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유튜버가 대통령에게 몇 마디 말했다고 청와대와 여당이 나서서 고발했다. 그렇게 할 일이 없나. 5년 전, 10년 전 이런 과거 사건들을 죄다 끄집어내서 야당탄압할 구실만 찾고 있다. 그런데 영부인 친구 ‘손혜원 비리사건’은 수사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위의 정의들에 비추어서 정리하자면,

나경원:
1) 문재인과 여당이라는 'a leader or small group'이 'exercises power within formally ill-defined limits but actually quite predictable ones'를 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신설하고,
2) 'Free & fair election'을 저해하는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황교안:
1)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측근을 임명해서 'free & fair election'을 저해했다.
2) 장관, 헌법재판관에서 국민의 의견에 반해 측근을 임명했다.
3) 행정부가 수사기관의 수사 및 사법부의 판결에 영향을 미쳐 정치적 반대파에게는 가혹하고 지지자에게는 관대한 수사 및 판결을 유도하고 있다.
4) 국민 중 정치적 의견이 반대인 사람의 발언을 억압해 'political pluralism'을 저해하고 있다.

앞서 본 독재의 여러 학문적 정의에 등장하는 요소, 특히 정치적 자유와 권력의 대표성을 집중적으로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유시민보다 독재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있다.

이에 반해 유시민의 발언은 잘해봤자 논점 일탈에 불과하다. 

벤 이즈 백 후기

영화 보고 나서 하루 지난 지금은 꽤나 단순한 스토리라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영화 보는 동안에는 완전히 몰입해서 그런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만큼 연출과 분위기가 흡입력이 뛰어나다.
모자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계속 보게 되는 그런 영화.

마약이 끊을 수 없다는 게 단지 쾌락에 대한 의존성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거기 각종 죄악마저 끊으려 해도 끊어지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 같다.
마치 아주 잘 늘어나는 줄을 당길 때 가늘어질 망정 끊어지지는 않처럼,
혹은 찐득한 게 묻은 표면을 아무리 닦아도 완전히 닦이지 읺는 것처럼 말이다.

서양 영화는 하여간에 이렇게 인간의 죄악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고,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는,
정말 인간은 원죄를 지니고 태어난 존재라도 되는 것 같은 그런 죄악.

인도, 중국 등 동양 문화권에서는 번뇌가 주된 테마인데 말이다.
그런 면에서 동양적인 시각에서 이 영화를 리메이크한다면 어떨지 궁금해졌다.

명탐정 피카츄 후기 (노스포)

단순히 포켓몬 팬덤에 의존하는 영화는 아니다.

단지 실사화돤 피카츄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보러 간 영화였는데
다른 사람에게도 추천할 만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카츄 등 주된 배역을 맡은 포켓몬을 등장시키느라 그런지
포켓몬이 등장한 신이 기대보다 조금 적었던 것은 약간 아쉽다.
전투 씬이 좀만 더 길었으면... ㅠㅠ

하지맞, 그만큼 피카츄 덕분에 소소하게 웃긴 장면들이 많았다.
그 점에서는 라이언 레이놀즈라는 배우를 적절히 사용했다고 본다.

만화 캐릭터를 자연스러움을 유지하며 3D로 옮긴 것도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피카츄는 귀여웠음... 레알루...

스토리에 나름 신파도 넣었고 반전도 넣었다.
반전에 관해 스포일러가 되지 않도록 하려다 보니 후기에 줄거리를 다루기가 곤란할 정도...

클라이막스가 좀 어설퍼서 읭?? 스럽긴 하다.
좀 더 강하고 치밀하고 사악한 악역이 나왔으면 어땠을까 싶긴 한데...
반전에서 반전으로 옮겨가는 동안에도 일이 너무 쉽게 풀리는 점도 아쉽고...

그래도 뭐 이런 어드벤처물에 가까운 영화 치고 그렇게 연출이나 스토리가 나쁘지는 않았다.
어차피 명탐정 피카츄라고 해서 진짜 추리물이라고 생각하고 보는 거 아니지 않나?

기대 이상의 스토리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대 이하도 아니었다.
영화 보기 전에 봤던 다른 리뷰들에서는
피카츄 빼고 다 버렸느니 하면서 스토리를 많이 지적하곤 했는데
좀 과한 비난이라고 생각한다.
스토리가 무리한 부분은 있었어도 보면서 모순된 점은 딱히 느껴지지 않았다.

전날 봤던 <벤 이즈 백>에서 나왔던 배우를 다시 본 것도 좋았다. 넘나 예쁜 것

역사와 역사가

역사란 역사가에 의해 다시 씌어지고, 심지어는 새롭게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것임을 백두산 이야기는 잘 보여주고 있다. 기업가가 공장에서 상품을 제조하여 팔듯이 역사가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역사를 생산하고 대중에게 유포시킨다. 잘 만든 제품이 시장에서 많이 팔리듯이 설득력 있는 역사는 대중에게 널리 수용된다. 그 점에서 역사가의 역사 쓰기는 대중의 역사의식에 구속된다. 그렇지만 새로운 아이디어의 혁신 상품이 대중의 수요를 선도하고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듯이, 시대를 앞서가는 역사가의 창조적 연구는 대중의 역사의식을 일깨우고 나아가 집단적 기억 체계로서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그 점에서 역사가의 역사 쓰기는 대중의 역사의식을 초월한다. 그래서 역사가의 책임이 막중한 법이다. (...) 그렇기 때문에 마치 기업가에게 기업가로서의 자질과 윤리를 묻듯이 역사가들에게도 같은 것을 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직업으로서의 역사학'에 요구되는 자질과 윤리는 무엇일까?

우선 한 가지는 대중의 역사의식, 곧 그 집단적 기억 체계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한 관찰력이다. 훌륭한 역사가는 대중의 집단기억에서 자신을 분리한다. 그것에 매몰되어서는 그것이 언제 생겨난 것인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관찰할 수 없다. 예컨대 오늘날 한국인들은 남에서나 북에서나 백두산 신화를 즐겨 소비한다. (...) 그렇지만 훌륭한 역사가는 그 모든 대중적 향유나 정치적 동원에서 자신을 자유롭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만 백두산이 언제부터 민족 구원의 상징이었는지, 언제부터 단군 국조의 강림지가 백두산으로 바뀌었는지, 언제부터 백두산 꼭대기의 그 큰 못의 이름이 천지였는지 등의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대중은 그러한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그러한 질문을 던지는, 던져야만 하는 의식의 소유자들, 그리고 스스로 던져 놓은 질문에 매달려 먼지 묻은 사료를 뒤지는 특수 직능의 소지자들이 역사가이다.

그러니까 역사가는 '시대의 아웃사이더'다. 역사가는 마치 길을 가는 행렬에서 빠져나와 산 위로 올라가 지나온 길을 살피는 사람과 같다. 높은 산으로 올라갈수록 지나온 길이 잘 보인다. 역사가는 고독하다. 그 고독을 견딜 수 있는 정신력의 소지자가 역사가이다. 역사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연구하는 과거의 시대에도 개입해서는 안 된다. 그는 현재에서도 과거에서도 고독한 아웃사이더이다. 역사가가 시대에 개입하여 역사를 바로 세운다든가 청산한다든가 함은 참으로 우스운 말이다. 누가 역사가에게 그러한 권능과 자격을 부여했단 말인가? 역사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오로지 드러내는 일일 뿐이다. 대중의 집단적 기억 체계로서 역사라는 것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를 드러낼 뿐이다. 그것은 때떄로 대중의 일반적 기대에 반하는 용기 있는 폭로이자 비판일 수 있다. 특히 그 역사가 특정한 정치세력이 대중을 동원하기 위해 기획한 음모일 경우에 그러하다. 또한 역사가는 역사의 진행이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지극히 복잡한 과정임을 드러낸다. 역사란 얼마나 불확정적이며 확률론적인 선택의 과정인가! 역사에 있어서 진정한 진보는 얼마나 느린 속도로밖에 이루어지지 않는가! 역사가는 그런 것들을 드러낼 뿐이다. 드러냄으로써 역사가는 대중이 성찰하게 한다. 그것이 역사가의 기본 책무이다.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다. 그 이상이고자 할 때 역사가는 이미 정치가요, 그 이하일 떄 역사가는 한갓 이야기꾼에 불과하다.

(...)

당초 한두 사람이 아무렇게나 늘어놓은 숫자와 이야기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역사가들이 공유하는 집단인식으로 승화하여 교과서의 기술로 발전했다. 나아가 그렇게 교육된 대중의 집단기억이 거꾸로 역사가 자신을 구속하는 기묘한 관계가 성립되었다. 내가 일제가 토지의 40퍼센트를 수탈했다는 국사 교과서의 기술이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하자 어느 역사가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선생, 대한민국 사람들이 다 그렇게 알고 있는데, 무슨 다른 근거가 필요하단 말이오."

- 이영훈, 왜 다시 해방전후사인가,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1> 中 -

역사학과는 별개로 의학철학과 의학사에 있어서도 필요한 자세이다. 아울러 의학 도서관에 쌓인 먼지 쌓이고 누렇게 떠서 닳아 없어져 가는 책을 다시금 꺼내 읽는 일이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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