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을 의과대학 교육과정에 포함시킬 때의 오해

1) 자연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병태생리와 진단기술의 발전으로 의학은 전근대의 기술에서 과학이 되었다. 따라서 의학을 이해시키기 위해 자연과학을 교육시켜야 한다. 

-> 현대 의학에서 인체를 하나의 생물학적, 물리화학적 시스템으로 보고 접근한다는 건 완전한 환상이다. 1900년 무렵부터 1970년대까지 계속 의학의 과학화라는 말이 되뇌어졌지만, 결국 진단, 치료, 예방, 재활과 같은 의학의 핵심은 통계적으로 증명되었지만 서로 간에는 어떠한 논리적 연결고리도 존재하지 않는 수많은 상관관계, 인과관계로부터 필요한 규칙을 선발해 적용하는 과정에 머무르고 있다. 여기에 어떤 모델도, 이론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과학을 비롯한 과학의 핵심은 관찰된 사실을 일련의 모델과 이론으로 엮어서 설명하는 일이다. 결국 병태생리나 진단기술의 원리에 해당하는 과학적 지식은 의학에 사영되는 순간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사실 의학 자체가 과학화된 게 아니라 의학적 사실이 기존 과학 분야의 명제에 더 잘 투사된 것 뿐이다. 다시 말해, 과학화된 건 의학의 인접 분야이지, 의학이 아니다. 의학의 인접 분야를 가르치는 데는 자연과학적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의학을 가르치는 데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 

2) 의학(위의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의학의 인접 분야)적으로 응용 가치가 높은 부분만 선택해서 가르쳐야 한다. 자연대 출신이라 의학(아니면 그 인접 분야)를 잘 모르는 사람이 의과대학에서 자연과학을 가르친 결과 자연과학자나 공학자를 양성하는 데는 필요할 지 몰라도 의학자에게는 필요 없는 지식만 너무 많이 가르쳐서 정작 의학(아니면 그 인접 분야)에 필요한 자연과학적 지식은 배우지 못하고 학생들 고생만 시킨다. 

-> 이런 주장은 20세기 내내 되풀이되었는데, 거기서 한 가지 공통점을 찾자면 그때마다 자연과학적 내용 중 쓸데없이 가르치는 것의 예시로 든 것들이 한 세대쯤 지나 보면 결국 의학(아니면 그 인접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에 어느 기고문에서는 혈액의 pH 같은 것을 가르치느라 심음 청진을 못 배운다고 한탄했는데, 21세기인 지금은 의사들 중 청진기를 사용하는 사람 자체가 별로 없는 반면(ㄹㅇ임), 혈액의 pH는 아주 중요한 생리적 지표로 활용되고 있다. 즉, 학생이 학교에서 배운 과학적 지식을 앞으로 30여년간 사용한다고 할 때, 당시에는 공대생한테나 가르칠 법한 내용이라고 욕먹었던 것들이 학생이 의사로 본격적으로 활동할 때는 중요해지고, 반대로 학생일 때는 의학적으로 활발히 응용된다고 배웠던 지식이 막상 졸업하고 나니 쓸모없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하물며 20세기 중에도 그랬는데, 앞으로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면 이런 일은 더 많이 생기면 생겼지, 덜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 하지만 이런 논리는 한정된 시간 내에 너무 많은 것을 쏟아부어야 하는 데다 그마저도 시간 효율이 낮은 의과대학 교육과정의 특성상 모든 것을 가르칠 수는 없으니 바로 윗 학년에서 공부하는 데 필요한 것을 위주로 가르치자는 주장을 반박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반박은 자연과학의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다. 즉, 체계화된 정도에 있어서는 서로 다르지만, 자연과학의 각 분야는 어떤 중심 명제나 개념을 바탕으로 순차적으로 쌓아나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게 가장 잘 드러나고, 또 가장 극단적인 예시인 물리학의 경우, 학문의 목표 자체가 모든 현상을 제일원리로부터 연역해나가는 것이다. 이런 중심적인 명제나 개념은 비록 응용에 이르기까지는 몇 단계의 전문화를 거쳐야 할지라도, 그런 최종적인 응용 지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때는 활용이 발견되지 않았던 해당 분야의 다른 지식을 새롭게 응용할 때도 도움이 된다. 따라서 그런 핵심 원리 및 개념 위주로 가르쳐야 한다. 보통 그런 건 당장 임상적인 응용이 불분명한 경우가 많아서 비판의 대상이 되지만, 한 마디로 근시안적인 비판에 불과하다. 

북핵문제 해법의 함정


금창리 핵의혹 시설과 미사일 위협은 새해부터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보다도 더 가혹한 시련과 긴장 국면으로 미국과 일본에서는 예고되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아무런 구체적인 대책도 없이 일방적인 유화정책(Appeasement)이 만병 통치약인 것처럼 처방되고 있다. 

대북 포용정책의 전략적 목표가 무엇인지 국민은 분위기만 따라갈 뿐, 사실상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현재의 대북 정책은 금강산 관광이란 성과도 있으나 전략적 혼동 그 자체인 것이다. 이런 가운데 남북한간의 항구적 냉전 체제의 종식을 위해 또다른 전략적 방안으로서 긴 겨울밤의 단꿈과 같은 포괄적 해결 구상이 선을 보이고 있다. 물론 포괄적 해결이 현안의 해결책이 된다면 누구나 환영하겠지만, 포괄적인 해결 논리가 가져올 우리의 안보에 대한 문제점, 함정과 착오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포기의 대가로 미국의 대북 경제 제재 완화, 식량 지원, 북·미간 외교관계 수립, 정전 체제의 평화 체제로의 전환 등이 교환될 수 있다고 보는 이 구상에 있어서 문제점은 북한의 ‘평화’ 체제 개념이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데 있다. 특별히 강성대국을 지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목표점을 향해 접근하고 있는 북한은 인민이 굶어죽는 것은 아랑곳없이, 마치 악어와 같은 파충류가 활동할 수 있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햇볕’을 이용하듯 더 많은 외부 지원을 하나의 전술적 쟁취로 보고 핵과 미사일이란 환상의 콤비를 실현해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우리 안보의 근간이 되는 한·미 방위조약의 파기를 겨냥해 지금까지 모든 선전 선동을 조직해 왔던 북한 지도부의 전략적 목표가 주한 미군 철수 문제가 될 것이라는 점은 일괄 타결 구상에 있어서 무서운 함정이다. 또한, 평화체제를 최종목표로 삼고 상호 신뢰를 검증해가기 위해 개별 사안별 연계 해법이 실효성을 담보하는 데 합당하다.

큰 착오는 한반도의 냉전 구조 자체를 북·미, 남북의 쌍무적 정치·경제·군사적 타결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다고 믿는 데에 있다. 그 이유는 세계적 냉전 종식은 동서 두 진영의 타결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베를린장벽의 붕괴가 상징해 주듯이 공산전체주의 체제의 자체 붕괴(소련·동유럽)와 체제의 근본적 개혁·개방(중국)에 의해 초래된 것이며, 북한 체제가 절대독재 체제로 존재하고 있는 한 한반도의 냉전 종식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절대독재 체제는 그 자체가 항구적인 평화에 대한 위협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냉전의 종식’이란 허구다. 우리는 안보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 나라에 타당한 논리를 왜곡해 한반도에 적용함으로써 무장해제를 통해 자멸을 초래하게 될 결과에 대해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칼럼] 無정책, 無이념, 無전략의 자유한국당

https://www.facebook.com/theliberaleconomist/posts/1137340113062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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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의 ‘반대를 위한 반대’는 정책 대안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볼썽사납기까지 하다. 아동수당, 기초연금 등 각종 현금성 복지를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일원화하자는 발상은 왜 하지 못하나. 기본소득은 관료 조직의 복잡한 전달경로를 거치지 않고 현금으로 지급되기에 복지비용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데다, 수혜자의 ‘선택의 자유’ 역시 보장 가능하다.

최저임금제도의 당위성은 저소득층이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탐색하고 이직하는 데에 드는 기회비용(생계 곤란 가능성)이 높아, 생산성 미만의 임금을 받아들이고 착취당할 수 있다는 논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기본소득은 그 기회비용을 줄여줘 최저임금제도의 존립 근거도 무력화한다. 시장 규제보다 건전 재정 안에서 높은 효능감을 선사하는 복지 제도가 훨씬 우월한 빈민 구제 제도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자유한국당엔 이러한 정책적 상상력이 없다. 현금성 복지는 ‘무조건 퍼주기’라는 식의 구시대적 반대논리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일반정부부채의 절반이 공무원들의 연금충당부채라는 점은 공공부문 개혁의 당위성을 잘 보여준다. OECD 다른 국가들보다 공공부문의 비중이 적다지만, 일반정부가 아닌 OECD의 기준대로 공공기관, 공기업, 정부 지원 기업, 학교 등을 포함한 ‘광의의 공공부문’을 비교하면 그리 낮다고 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무엇보다 유례없이 빠른 고령화로 인한 복지 수요 증가로 자연적 재정 확대가 확실시 되는 상황에서 공무원 증원은 물론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방만하고 비대해져가는 공공부문을 개혁하는 것과 생활 안전 분야 공무원을 늘리는 것은 논리적으로 충돌하지 않는다. 행정직 공무원, 공기업․공사․공공기관 종사자, 교직원 등 철밥통들의 지나친 고용안정성, 생산성과 연계되지 않는 연공급과 다락같이 높은 연금을 타파하여 꼭 필요한 부문의 공무원에게 적절한 처우를 보장하는 방법을 강구할 순 없나. 해고 유연성과 성과연봉제, 연금 삭감 중 반드시 두 개는 선택하도록 승진 트랙을 구성하거나, 기존 공무원의 신규 채용을 제한하여 자연 감소에 따른 양적 긴축을 기대할 수도 있다. 요 근래 자유한국당에서 이처럼 의미 있는 정책 대안이 제시된 것을 본 적이 없다.

시장 경제에 대한 구성원들의 이해가 바닥 수준이라는 점은 더 큰 문제다. 올해 예산안이 “사회주의 예산안”이라며 국회에서 열변을 토하던 전희경 의원은 대형 유통 기업에 영업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 발의안에 서명했다. “돈 풀어서 숨넘어갈 것 같은 국민들 숨통 좀 트이게 하고 싶다”는 지난 해 추경 당시 연설 내용은 그가 자유기업원 출신이라는 사실을 무색케 했다. 자유기업원은 재정 확대가 오히려 경기 침체를 부를 수 있다는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을 지지한다. 최근에는 류여해 최고위원이 비즈니스석 이용 고객에게 신속 수속 서비스(패스트 트랙) 제공을 검토 중이라는 인천국제공항을 ‘평등권 침해’라는 취지로 비판했다.

無정책과 無이념의 종착지는 無전략이다. 내세우고자 하는 것, 지키고자 하는 것이 없으니 기민한 전략이 솟아날 리 만무하다. 표결에 참여하지 않아, 자당 의원 수로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던 법인세 증세안조차 막지 못했다. 재원의 부족으로 격무에 시달리는 이국종 교수의 존재는 사실상 모든 의료 행위의 가격을 후려치겠다는 문재인 케어의 문제점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기표임에도,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그와 기념사진 찍기에만 급급했다. 3박자를 고루 갖춘 자유한국당의 현재는 ‘망할 게 확실한 불임 정당’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오직 북풍(北風)만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 꼭 뿌리 썩은 갈대의 모습이다.

정체성 정치는 그만

제7회 지방선거는 보수야당에 대한 심판인 것 같다



바른미래당과 자유한국당은 중도, 우파정당 나름의 분명한 가치와 원칙을 개발하기보다는 단지 서로 간의 차이를 부각시키는 데 과도하게 집중한 측면이 있습니다. 

일단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좋든 나쁘든 간에, 허상이건 실질적이건 간에 과거 정부에서는 보여주지 못했던 정책 - 대표적으로 대북정책 - 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더불어민주당 정책에 일단 반대하고, 바른미래당은 솔직히 외부에서 보기에는 특별한 원칙 없이 두 정당의 입장 사이를 줄타기하는 데 집중하고 있으니, 두 정당 모두 정책적 리더십은 느껴지지 않고 단지 단지 몰락한 범보수세력의 이합집산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결국 유권자의 마음을 되돌리려면 야당 간의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경쟁은 자원 낭비일 뿐입니다. 중도와 보수를 아우르는 정당으로서 통합한 뒤 본인들이 한국의 정치적 스펙트럼 중 어디 위치하고 있다고 소리치는 것은 그만두고 대한민국의 미래상과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정책 연구에 역량을 총동원해 어젠다를 선점해야 합니다. 

두 정당 모두 새누리당 계열이라는 점에서 박근혜 사태와 관련해 오명을 쓰긴 했지만, 그렇다고 박근혜와의 연관성이나 그 유산을 단순히 부정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어차피 현재 그걸 물고 넘어지는 유권자는은 무슨 방법을 써도 중도/보수 정당으로 끌고 올 수 없습니다. 과거 정책과 인물의 비판적인 계승이 필요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걱정되는 것 중에 하나는 현재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높고 선거 결과가 좋다고 해서 거기에 단순히 영합하거나 타협할 가능성입니다. 물론 다른 정당의 정책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이유와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가령, 북한 포용 정책을 한다고 해도 당의 강령이나 정책 연구를 근거로 제시할 수 있고 다른 정책과 일관성이 있어야지, 선거 졌다고 어느 날 갑자기 우리도 북한과 대화 찬성한다고 돌아서버리면 누구의 신뢰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정당의 정체성 정치는 그만하고 실질적인 정책적 리더십을 구축해야 현 중도/보수 야당의 미래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얘기 하시던 분들

1) 김정은도 이번 대화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얻지 못하면 놓치면 북한 내부에서도 '뭐하러 이런 일을 했냐'는 비판이 나올 것이니 틀림없이 기존에는 보이지 않았던 전향적인 모습으로 나올 것이며, 한미일이 이런 대화 기조에 유화적인 태도로 잘 응해 주기만 한다면 북핵 폐기에 큰 진전을 볼 것이다.
(특히 세종연구원 분들 ㅋㅋㅋ)
2) 남북 회담이랑 판문점 선언에서 모호한 언사만이 오가고 구체적인 성과를 이루지 못했지만, 그건 극적인 효과를 원하는 트럼프에게 중요한 협의를 사인할 수 있는 기회를 몰아줘서 그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한 문재인의 고도의 계산이다.
3) 협상의 대가이자 이란 같은 나라에게 결코 굽히지 않는 트럼프가 북한에게도 최후통첩을 날려서 자유 서방 세계 앞에 굴복시켜 놓을 것이다.
(뉴밸에(만) 드글드글한 ㅋ)

대체 어떻게 된 건지 해명을 듣고 싶네요. ㅋ

아무리 봐도 원래 외교나 정치, 각종 이슈에 문외한인데다 허풍쟁이, 관심병 환자인 트럼프가 협상을 통해 시간을 끌며 국제사회의 제재를 약화시키고자 하는 김정은에게 잘 끌려다닌 결과인 것 같은데요. ㅋㅋ

결국 anti-establishment를 외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통하는(?) 구석이 있나 보네요.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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